나의 이야기

간디자서전

슈마허 2014. 11. 30. 22:11

 

간디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한길사, 함석헌 옮김)

 

1. 성장의 시간

진리는 나의 등대요, 나의 작은 방패다. 그 길이 비록 험하고 좁고 면도날 같이 날카로울지라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가깝고 가장 쉬운 길이다.”

 

(중학교에서)산스크리트 선생과 페르시아 말 선생 사이에는 일종의 경쟁이 있었다. 페르시아 말 선생은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페르시아 말을 쉽고, 페르시아 말 선생은 착하고 학생들을 잘 봐준다고 하였다. 쉬움이 나를 유혹해 어느 날 나는 페르시아 말 시간에 들어가 앉았다. 산스크리트 선생은 매우 섭섭해 했다....... 나는 선생의 사랑을 져버릴 수 없었다. 오늘 나는 크리슈나샨카르 판댜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때에 내가 조금이나마 산스크리트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도저히 우리의 성전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산스크리트의 좀더 깊고 완전한 지식을 얻지 못한 것이 크게 후회스럽다. 뒷날에야 나는 모든 힌두의 자녀들은 산스크리트의 완전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76).

 

(채식실험)참 맛은 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122).

 

(니르발라 케 발라 라마)예배나 기도는 결코 청산유수의 말을 날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입술로만 하는 충성이 아니다. 그것은 심정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심정을 온전히 정결케 하여 그 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사랑뿐인지경에 도달한다면, 그것들은 떨리는 음악이 되어 볼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간다.” 기도에는 말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그 자체가 어떠한 감각적인 노력으로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기도가 심정의 정욕을 씻어 깨끗이 하는, 틀림없는 방법이란 것을 터럭만큼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 절대의 겸손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140).

 

2, 어둠의 땅, 아프리카

하자는 의지 없이 하려는 생각은 단순한 감정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재갈 물린다는 것은 곧 마음을 재갈 물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을 재갈 물리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도와의 사귐)만일 그것이 모든 기독교인이 고백하는 기독교적 신앙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죄의 결과에서 속죄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죄 그 자체에서 속죄되기를, 또는 죄의식에서 속죄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는 안정될 수 없음을 감수하겠습니다(201).

 

(소송 준비)그러나 양쪽은 이 결과에 만족했고, 둘 다 공중의 신망을 더 얻게 되었다. 나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나는 법의 진정한 활용을 배웠다. 또한, 인간성의 선한 면을 찾아내는 길을 배웠고, 인간의 심정 속에 들어가는 길도 배웠다. 나는 법률인의 진정한 역할은 서로 갈라선 양쪽을 화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교훈은 도저히 지워질 수 없이 내 속에 낙인이 찍힌 것이었으므로, 나의 변호사로서의 20년간의 대부분은 수백 건의 사건을 화해시키는 데 쓰였다. 그로써 내가 손해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돈으로도 그렇지만 내 영혼으로는 더구나 그렇다(212).

 

(종교심의 발효)나의 고민은 더 깊은 데 있었다. 예수만이 오직 하나님의 화신이요, 그를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만일 아들을 둘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그의 아들일 것이요, 예수가 만일 하나님과 같거나 혹 하나님 자신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과 같이 생겼을 것이고 하나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성은 예수가 그의 죽음과 피로 세상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비유한다면 거기에 어떤 진리가 있을 것이다. 또 기독교에 의하면 오직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고있을 뿐이요, 다른 생물에는 영혼이 없어서 그것들은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만다고 한다.

나는 그와는 반대의 믿음을 갖는다. 나는 예수를 하나의 순교자로, 희생의 화신으로, 거룩한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일찍이 태어났던 인간 중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음은 세상에 대해 위대한 모범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신비롭고 기적적인 공로가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경건한 기독교인들의 생애가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줄 수 없는 무엇을 내게 주는 것은 없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듣는 것과 꼭 같은 새로 남,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서도 보았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의 원리들은 각별히 독특한 것이 아니다. 희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힌두교가 기독교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기독교를 완전한 종교, 또는 모든 종교 중 가장 위대한 종교라고는 나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214).

톨스토이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the Kingdon of God is within you)는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216).

 

(실행위원회가 된 송별회)“압둘라 셰드씨, 보수는 문제가 아닙니다. 공공의 일에 보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머물러 있어야 한다면 심부름꾼으로 머물러 있겠습니다. 또 다 아시는 대로, 나는 여기 계신 여러분과 다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함께 협력하리라고 여러분께서 믿으신다면, 나는 한 달 더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내게는 아무 것도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만 우리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일은 출발에서 약간의 자금이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전보도 쳐야 할 것이고, 책자도 인쇄해야 할 것이고, 여행도 더러 하게 될 것이고, 지방변호사들과 상의도 해야 할 것이고, 또 나는 여기 법률을 모르니 법률서적도 더러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돈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업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를 돕기 위해 자진해서 나서는 분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219).”

 

3. 나의 일은 인도에 있다.

생활을 한층 더 간소하게 해야 한다는 것과 동포들을 위해 구체적인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문제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브라마차리아)학문적으로는 범행(梵行)이라 번역한다. 넓게는 모든 금욕을 뜻하나, 특히 엄격히 성행위를 금하는 정결주의, 동정 생활을 의미한다. 간디는 일생 영구 동정을 강조한다(295).

 

(위생개량과 기근구제)그와 같이 남아프리카의 인도인들의 봉사는 언제나 내게 진리의 새로운 의미를 밝혀주곤 했다. 진리는 큰 나무와 같아서 잘 가꾸면 가꿀수록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준다. 진리의 광산은 깊이 파면 팔수록 그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을 더 많이 캐낼 수 있다. 그 보석이란 갈수록 늘어가는 가지가지의 봉사의 길이다(311).

 

(인도로 돌아오다)나는 공공사업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값진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315).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일)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 지극히 높으신 본체가 계시어 그 불확실, 일시적인 것 뒤에 확실로 숨어 계신다. 사람이 이 확실자의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고 거기다 제 수레를 붙들어 맬 수 있다면 복된 자다. 진리의 탐구야말로 인생의 지상선이다(351).

 

4. 사티아그라하, 끝없는 진리의 실험

내 모든 실험의 결과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진리의 완전한 모습은 아힘사의 완전한 실현이 있은 뒤에 가능하다.”

 

(, 물 치료법의 실험)그 무렵 나는 맨체스터에서 아침 안 먹기 모임’(No Breakfast Association)이 결성됐다는 기사를 읽은 일이 있었는데, 그 발기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영국 사람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먹는다. 밤중이 될 때까지도 먹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에게 주는 돈이 많다. 이러한 꼴을 면하려면 적어도 아침은 안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모두가 나에 대한 소리는 아니지만, 그 어느 부분은 나에게 들어맞는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372).

 

(경고)사람이 어릴 때 먹는 어머니 젖 이외에는 다른 젖은 절대로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 외의 음식은 햇볕에 익은 과일이나 굳은 껍데기의 씨 이외의 것은 안 된다. 사람은 포도 같은 과일이나 굳은 껍데기의 씨 이외 것은 안 된다. 사람은 포도 같은 과일이나 아몬드 같은 굳은 씨로 조직과 신경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그런 음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욕이나 그 외의 욕심을 억제하기가 쉽다. 내 동업자나 나는 체험에 의하여 사람은 먹는 대로 된다는 속담에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375).

 

(권력과의 대결)제도에 반항하고 공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제도를 만든 사람을 반항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반항하고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같은 붓으로 먹칠이 된 것들이요, 그러면서 같은 창조주의 자녀들이요, 그렇기 때문에 또 우리 속에 있는 거룩한 능력도 무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을 업신여김은 그 거룩한 능력들을 업신여김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몸만을 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온 세계를 해지는 일이다(380).

 

(책의 마력)그 책(러스킨의 이 나중 온 자에게도”=Unto This Last)은 한번 읽기 시작하자 놓을 수가 없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까지는 스물네 시간의 여행이다. 기차는 밤에 도착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생활을 그 책의 이상에 따라 변경하기로 결심했다(405).

이 나중 온 자에게도의 교훈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첫째, 개인의 선은 전체의 선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둘째, 변호사의 직업은 이발사의 직업과 꼭 같은 가치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꼭 같이 제 직업으로 제 살아갈 것을 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셋째, 노동자의 생활, 즉 밭을 가는 자의 생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자의 생활이 보람 있는 생활이라는 것(406).

 

(가정을 들여다 봄)아이들은 부모의 신체적 특색 못지않게 그 소질을 물려받는다. 환경이 물론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아이가 그것을 기초로 삼고 인생을 시작하는 근본적인 밑천은 조상으로부터 유전되어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인도인 부모가 자기네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그 아이들에 대해서나 조국에 대해서나 옮지 않은 행위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그 아이에게서 민족의 정신적, 사회적 유산을 박탈하고, 그리하여 그만큼 나라를 위한 봉사에 적응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런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 아이들과 말할 때는 반드시 구자라트어로 한다(420).

 

(음식의 절제)육욕적인 마음은 언제나 맛있는 것과 사치스러운 것을 탐내는 법이다. 이러한 경향을 막아내기 위해서 음식의 절제와 단식이 필요하게 된다. 육욕적인 마음은 감각을 통제하기는커녕 그 노예가 돼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는 언제나 깨끗하고 자극적이 아닌 음식과 주기적으로 하는 단식이 필요하다(441).

 

(단식)단식이나 이와 비슷한 수련은 자제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방법이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육체적 단식에 정신적 단식이 병행하지 않으면 위선과 파멸로 끝나고 만다(445).

 

(학문교육)교과서에 관하여서는, 그것에 대해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그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것조차 이용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많은 책들로 짐을 지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교과서는 바로 아이들의 선생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선생이 책을 통해서 가르쳐준 것은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책과는 상관없이 가르쳐준 것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은 눈보다 귀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많고 힘도 덜 들었다. 나는 아이들과 어떤 책이든 간에 첫 페이지를 같이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책에서 읽어서 소화시킨 내용을 내 입을 통해 그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것은 지금까지도 그들 마음 속에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려면 힘이 든다. 그러나 내가 내 입으로 말해준 것은 아주 쉽게 받아 외웠다. 내각 내 과목을 흥미 있게 해주지 못함으로써 그들이 싫증을 내게 하지 않는 한, 읽기는 그들에게 힘드는 일이었어도 내게서 듣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 말을 들음으로 인해 형성되는 그들의 이해력을 나는 측량할 수 있었다(450).

 

(정신훈련)정신의 실습은 완전히 교사의 생활과 성격에 달렸다. 교사는 제자들 앞에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언제나 언동을 조심해야 한다(451).

선생은 제자에게서 몇 마일을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 생활을 통해 그들의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내가 만일 거짓말쟁이라면 아이들더러 참되게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겁쟁이 선생은 결코 제자를 용감하게 만들 수가 없다. 자제가 뭔지 모르는 선생은 결코 자제의 귀함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452).

 

(정신적 딜레마)아힘사는 포괄적인 진리다. 우리는 힘사(살생)의 불길 속에 같힌 무력한 인간들이다. 생명은, 생명으로 산다는 말은 그 속에 갚은 의미를 가지고있다.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외견상으로 살생을 범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사실 그 자체, 즉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그것이, 비록 매우 작을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어떤 힘사, 곧 생명의 파괴를 가져오게 한다. 그러므로 아힘사의 신자는 그의 모든 행동의 원천이 자비심에 있기만 한다면, 그의 있는 힘을 다하여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라도 살해하지 않고 그것을 구해주려고 애쓴다면, 그리하여 그 무서운 살생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그는 변함없이 제 신앙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요, 부단히 자제와 자비 속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완전히 외적인 살생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464).

 

(변호사 시절의 추억)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이야기는 벌써 한 줄로 안다. 나는 내 직업에 거짓된 방법을 썻던 일은 없다는 것, 또 변호사 업무의 대부분은 공공사업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 그것을 위한 비용에서도 정도 이상의 수수료를 받은 일은 없고, 그나마도 때로는 내가 치렀다는 얘기들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나의 법률 영업에 관해서 필요한 말은 다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상대 변호사가 증인들에게 미리 가르쳐주었다는 것, 또 내가 만일 내 의뢰인이나 그의 증인더러 거짓말을 하도록 가르쳐만 준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그 유혹을 물리쳤다.... ....정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언제나 내 의뢰인이 정당한 때에만 이기자는 것이었다. 변호료를 결정하는 데 나는 한 번도 내가 이긴다는 조건 아래 했던 기억은 없다. 내 의뢰인이 이기거나 지거나 나는 내 변호료 이상도 이하도 기재하지 않았다(478).

나는 새 의뢰인을 만날 때마다, 처음부터 내각 부정사건을 맡으려니 하는 생각은 하지 말고 증인을 코치하려니 하는 생각도 하지 말하는 주의를 주었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나는 부정사건은 의뢰받지 않는다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479).

 

(사건의뢰인의 협력자가 되다)수백 명이나 되는 사건의뢰인들이 친구가 됐고 공공봉사의 진전한 협조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므로 인해, 고난과 위험으로 가득 찼을 생애가 화기애애하게 되었다(484).

 

5. 구원과 투쟁, 다시 민중 속으로

한 개인을 업신여김은 그의 거룩한 능력들을 업신여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몸만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온 세계를 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