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등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슈마허 2008. 8. 28. 16:27

2008. 8. 23.

올림픽 야구에서 마침내 쿠바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스코아는 3-2,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를 병살로 마무리하고 극적인 우승을 일궈낸 것입니다.

 

전 그날 친구들과 등산후 회식을 하느라 집중하여 경기를 시청하진 못했습니다. 그날 경기를 차분히 시청한 사람들에겐 정말 손에 땀을 쥐는 재미난 경기였을 겁니다. 그리고 올림픽 우승까지 야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운동장을 찾은 사람들에겐 그보다 더한 행복한 순간은 없였을 겁니다. 전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승리의 환호만을 마땅히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였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 KBS에 단박 인터뷰란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이 있습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야구 우승에 1등 공헌을 한 김경문 감독였습니다(단박 인터뷰란 프로그램을 그 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인터뷰 프로그램으론 꽤 괜찮은 프로그램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그날 주인공에 따라 꽤 공부를 많이 하고 들어온다는 느낌입니다). 그날 인터뷰를 통해 김경문 감독이 선수론 2류 인생을 살아왔고 감독으로도 현재까진 그다지 성공하지 않은 감독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김경문 감독의 인터뷰 중엔 자신이 2류 인생을 살아왔던지라 실패해도 두렵지 않고 일시 성공해도 안주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젤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지금처럼 영광의 꼭대기에 올랐음에도 자신의 영광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거만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지금과는 반대로 앞으로 실패할 수도 있음을 아는 그런 감독였습니다.

 

어쩜 2류 선수 출신인지라 좀 더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을 지니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그런 감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9회 1사후 포수 진갑용의 의견을 듣고 윤석민을 세우지 않고 정대현을 세웠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2류인 김경문 감독이 기라성 같은 1류 감독들을 제치고 야구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드라마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야구 국가대표팀이 WBC 4강 후 도하 아시안게임 등에서 워낙 죽을 쓰니까 <독이 든 성배>를 마실 1류 감독은 없었을 겁니다... 어려운 순간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도 없고 다시 재기하면 된다는 2류 선수 출신 김경문 감독이 히딩크 후 2008. 8.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커다란 꿈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가만 히딩크도 선수론 1류가 아니었다지요).

 

여기서 잠깐 제가 2류에 주목하는 이유는 김경문 감독의 야구가 우승했다고 하는데만 있진 않습니다. 우승은 정말 김경문 감독의 말마따나 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류에겐 1류에겐 없는 훌륭한 장점이 있습니다. 나보다 뛰어난 1등이 있다는 자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자신에게 온 시선이 집중되더라도 독식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한때 2인자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줄도 알고 자기 식견이나  지식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였으므로 결단코 외눈박이나 고집쟁이, 근본주의자, 과격주의자들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김경문 감독에게서 배어나오는 겸손과 여유가 그렇습니다.

 

그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나 정치, 사회를 들여다보면 그놈의 일류병이 문제입니다. 위정자나 사회지도층 대부분이 특정 일류학교에 편중되어왔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잘하고 똑똑했던 1류들만이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체육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닐 겁니다. 선수 출신으로 1류(엘리트)가 되어야 지도자로서도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분야가 그 분야에선 잘나가는 일류들로만 채워져왔는데... 그렇게 하여 지금껏 1류들이 지배해온 이 나라, 이 사회의 현주소는 과연 어떤지요...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고 양보와 타협할줄도 모르며 자기 주장, 자기 얘기만을 내세우는 근본주의자, 과격주의자들이 큰 목소리 내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았나요...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말합니다. 정부가 시장보다 결코 우월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유는 정부가 아무리 정보를 독식한다 하더라도 현장의 마이스터의 정보를 능가할 순 없다고.. 건설현장의 목공을 생각해봅시다. 공사의 품셈이나 공정 등을 아무리 스탠다드로 통일시켜놓는다 하더라도 몇 십년간 현장에서 뛰어온 목공 1인의 정보(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임기응변을 커버할 순 없습니다... 비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선 조적을 어떻게 하고 겨울에 영하 40도씩 내려가는 지역에선 조적을 어떻게 하는지는 그곳 현장에서 오랜기간 경험해온 조적공의 판단만이 정확합니다... 김경문 감독은 자신의 판단(윤석민)보단 9회 1사후 공을 받아본 진갑용의 현장 판단(정대현)을 존중해줬습니다...

 

우리 사회가 2류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근본(권위)과 근본(권위)이 서로 마주보는 열차처럼 달리고 사회적 갈등만을 조장하는 그런 사회는 안되지 않았을까요..  자기를 절대선으로 생각하는 일류 아래에선 남의 판단은 무시되기 일쑤고 현장의 마이스터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이제 2류가 전면에 나서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사회를 한번쯤 꿈꿔보는 것은 어떤지요... 그럼 잘은 몰라도 김경문 감독이 야구에서 우승하였듯이 오히려 지금보단 더 나은 일류국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나만의 지나친 논리 비약이고 억측인가요... 암튼 지금도 이류로써 묵묵히 살아가는 여러분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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