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통령 하야에 대한 단상

슈마허 2016. 11. 12. 22:24

[대통령 하야에 대한 단상]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대통령 하야를 요구받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야가 맞는지 맞지 않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저마다 나서 하야를 촉구하고 눈치 보던 국민들까지 나서 삼삼오오 모이면 저마다 하야를 말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아직 인격형성이 다 갖추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중·고등학생까지 나서 대통령을 그나마 다행스럽게 박근혜씨라 칭하며 하야를 외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잘못이 대통령에게 있음은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필자도 지금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이해관계도 없을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로부터 딱히 혜택을 입었다고 볼 그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며칠 곰곰이 대통령의 하야를 생각해 보았다. 과연 하야가 옳은 해결방안인지?

 

헌법 제66조에 보면,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부터 제85조까지 대통령에 관한 권한과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쉽게 얘기해서 그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써 수권자를 정하고 그 수권자가 권한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법치주의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법률이 아닌 헌법에 실로 막대한 권한이 규정되어 있다. 헌법제정자들이 헌법에 아예 그 권한의 수권규정을 둔 것이다. 이를 열거하면,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고,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하고, 국군을 통수하고,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고, 긴급·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이나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고, 계엄을 선포할 수 있으며,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하고,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고,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하고,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전직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 법률로 정하도록 되어 있고, 끝으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84).

 

이런 막중한 권한과 책무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에 대하여 우리 헌법에서는 그 선출방식에 대하여서만 규정하고 있지 국민소환에 관하여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헌법이 직접 국민투표로 공무원을 선출하도록 정한 것은 대통령과 입법권을 가진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둘뿐이다. 대한민국의 나머지 공무원은 국회의장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그 선출방식이 법률에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대통령에 관하여서는 다른 공무원과 같이 징계, 해임에 관한 법령이 없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을 주민이 소환할 수 있는 것(지방자치법 20)과 같이 대통령을 소환하는 법령도 없다. 그런 법령이 있으면 위헌이다. 다만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재적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고(651, 2),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관장하며(11112), 탄핵의 결정은 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1131).

 

결국 우리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는 국민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으며,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여 탄핵이 되지 않는 한 대통령 하야와 같은 경우를 상정하여 헌정중단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아무리 형사상 소추를 당할 범죄(재직 중에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가 아닌 한 형사상 소추를 당하지도 않지만), 심지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에마저 대통령 스스로가 일신상 사정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지 않는 한(헌법에는 이와 같은 유고에 대비하여 대통령 권한대행의 순서를 정하고 있다), 국민이 소환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하야하게 할 수는 없다. 헌법제정권력자가 어째서 이와 같이 대통령의 신분을 보장하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자는 국민저항권을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지지율 5%인 대통령이 어떻게 국가를 통치할 수 있겠는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전례가 없고 그 깊이나 위중함을 함께 고려하면 국민저항에 부닥친 대통령을 하야하게 요구하는 것이 국민저항권이며, 헌법제정권력자가 헌법을 만들어 권한을 주기 이전에 권력의 주체인 국민이 당연히 유보하고 있는 기본권이자 국민저항권이라고 말이다. 헌법초월적 권리로서 국민저항권을 논의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저항권은 결국 우리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법치국가의 길과는 다른 것으로서 그것은 기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혁명권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헌법의 기본가치를 그대로 숭상한다고 하더라도 헌법기관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방법 외로 파괴한다면 그것도 바로 혁명인 것이다. 필자가 법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법의 가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정의와 법적 안정성이 그것이다. 흔히들 정의가 무엇보다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문외한이나 법학의 초보자가 빠지기 쉬운 오류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수가 왜 독배를 기꺼이 마셨겠는가? 영미의 존 롤스, 로날드 드워킨 등 걸출한 법철학자들이 나오기 전 20세기 초반 최고의 법철학자라 일컫는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같은 법철학자도 정의보다는 법적 안정성을 더 우위의 가치로 두려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필자는 법적 사고는 끊임없는 이익형량이라고 생각한다. 정의와 법적 안정성은 매우 큰 틀에서 이익형량에 따라 비교되어져야 할 것이지, 정의가 법적 안정성보다 언제나 우선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법률에서 법적 안정성을 고려한 규정이 존재하는가? 필자는 우리 헌법제정권력자가 대통령에 대하여서는 탄핵 외에 그 어떤 헌정중단도 예정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정의보다는 법적 안정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 얘기로 필자의 결론은 뻔하다. 대통령이 그간 헌법기관과 법률이 창설한 기관을 통하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아무런 정당성과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 일개 자연인과 그 무리들에 휩싸여 국정을 운영하였다면 그것은 경우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위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대통령 스스로가 하야하지 않는 한 국민이 그녀의 하야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일부 야당과 언론, 국민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법적 안정성을 포기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국민저항권이나 혁명권의 명목으로 하야를 요구하여 헌정을 중단시키기에는 아직 그렇게 헌법과 법률의 위배 정도가 심각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아니 시중에 넘쳐나는 대통령 관련 정보들 중에 얼마큼이 사실이고 얼마큼이 근거 없는 소문인지조차 명백하지도 않으므로 헌법과 법률 위배의 심각성 정도조차 논의하기 힘들다. 또 대통령이 최순실과 그 무리들로부터 농단을 당하였다고 보더라도, 박근혜 정권에서 그간 결정되고 집행된 외교, 국방, 경제 등 정책과 국가운영의 결과들이, 최순실과 그 무리들의 사리사욕과 관련된 형사적 범죄 외에는, 헌정중단을 요구할 만큼 크게 잘못되어 바꾸지 않으면 안 될 부분들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번 미 대선 결과를 언급하지 않아도 여론조사가 실제 어느 정도 맞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국민 단 1%가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하야를 위하여 장외투쟁을 독려하는 야 3당의 자세는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여 퇴임후 그녀를 감방에 보내야 한다면 감방 보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다음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맺는다.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을 시발로 맞은 소위 민주화 정권들을 보면 임기 1년 전후로 대형 비리나 악재가 터져 나왔다. 25년간 어느 한 정권도 비켜가지 못했다. 이쯤 되면 뭔가 이 제도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우리네 사회 전반이 잘못되었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원인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임기 1년 전후의 위기와 혼란은 거의 필연으로 우리 사회가 떠 앉아야 할 희생과 위험과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 대통령을 꿈꾸는 자여 그대도 4년 후에는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 그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으려는 자, 그대여! 그대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5년짜리 유랑도적단이리라!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더욱 나가서, 백번 양보하여 박근혜 정권이 중도하야하고 헌정중단이 초래된다면, 앞으로 이어지게 될 모든 정권은 너무나도 쉽게 국민들로부터 중도하야의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소위 비탈길이론을 보라! 그렇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는 박근혜 정권을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가 말했듯이, 지금의 불의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면 말이다. (2016.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