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수사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하여 (2005. 10. 17.자 글)

슈마허 2012. 4. 29. 21:45

 

강정구 수사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하여

 

(이 글은 제가 네이버 블로그에 2005/10/17 21:45 게시한 글을 이곳 블로그에 옮겨 게재하는 글입니다.)

 

요즘 강정구 처벌과 관련하여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반발한 검찰총장의 사퇴를 계기로 정치권과 시민단체, 언론, 학계 어디 할 것 없이 보수와 진보로 진영이 갈려 시끄럽다. 청와대로 대변되는 진보진영에서는 급기야 검찰의 반발을 집단항명으로 규정짓고 검찰권력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오늘 민정수석이 기자회견까지 하였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강정구 처벌을 놓고 구속, 불구속의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이지만, 본질은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둘러싼 보혁간의 갈등인 셈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의 작금 태도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강정구 발언에 대하여는 누구도 정면으로 동의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워낙 여론이 불리하여 은폐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심정적으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정책으로 밀고 있기 때문에 강정구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처벌한다는 자체를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을 사문화시키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은 좀더 솔직한 태도로 여론의 심판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는 법무부장관의 지휘권발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백보를 양보하여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논리는 언제나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의 간섭으로 기능할 여지가 있다. 민정수석까지 나서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야기하지만, 민주적 통제란 말과 같이 애매모호한 단어도 없다. 과거 독일의 나치정권은 민족사회주의란 미명 아래 독재를 하였는데 민주적 통제란 결국 독재의 또 다른 말로 들린다. 구체적 사건에서 법무부장관이 검찰권의 행사를 간섭하기 시작하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닥칠 수 있다. 검찰의 통제는 정치권력이나 법무부장관이 하는 것이 아니고 법과 사법부에 의해 맡겨져야 한다. 

셋째는 우리가 구체적 사안에서 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정말 여러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법에서는 양쪽 귀로 듣는다는 격언이 있다. 흔히들 사람들은 자기와 친한 사람, 자기 편인 사람에게 유리하게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사실마저 왜곡하려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 분쟁 사안에서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한쪽 당사자는 한쪽 면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미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사건에서 직접 법을 적용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정치적 입장에 서있는 법무부장관보다는  수사검사나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더욱 공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속,불구속 여부, 기소, 불기소 여부, 유죄, 무죄의 여부 등의 결정은 우리 헌법과 법률이 검찰권력과 사법권력에 부여한 것이고, 가급적 이들의 권력행사는 독립성 보장이 생명인 것이다.

넷째는 강정구 발언이 법에 저촉되는가, 학문,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속하는가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법적 문제가 된 이상 이는 사회구성원들이 만장일치로 법에 저촉하지 않는다거나 법에 저촉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으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그 판단은 1차적으로 검찰권력이 하는 것이고, 2차적으로 사법권력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권력과 사법권력에 의한 판단이 있으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법적안정성과 사회적 통합을 위해 그 판단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아무리 검찰권력과 사법권력이 못마땅하다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해 권력이 부여된 이상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강정구 발언이 학문,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인지, 법에 저촉되는 영역인지, 법에 저촉되는 영역이라면 구속의 사유가 있는지 등은 그들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이는 시회의 기본적 구성원리인 것이고, 법치주의의 근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