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일찍이 토크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관들의 자의적 권력은 전체 국가에서 보다 훨씬 크다. ~ 그 어디에서도 민주공화국에서보다 더 큰 자의적 권력을 법에 부여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옥스퍼드 대학의 법철학자 조지프 라즈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원리적으로 잘 결합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법의 이름으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에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들이 권하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정치체제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면 사법부는 의회에서 이루어진 민주적 결정을 가능한 한 존중해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민주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을 법으로 가져가는 정치의 나쁜 습관부터 교정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중대 사안일수록 법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정당의 중요성
시민이 직접 통치에 참여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정치는, 노예와 여성에게 생산과 재생산을 전담시킨 시민 집단의 여가에 기초를 둔 아주 작고 동질적인 통치단위에서 실천되었다. 따라서 과거 도시국가와는 달리 대규모 영토국가의 형태를 띠고, 고도로 분화된 사회구조와 기능을 필요로 하는 현대 정치체제에서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시민의 직접 통치 내지 집회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위험한 일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잘하고 그것을 위해 좋은 정당을 만들고 발전시키며, 적극적으로 지지할 만한 정당 대안을 통해 투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것들을 부정하는 추상적 논의속에서 자족할 일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지배'체제가 아니라 '시민의 동의에 의한 지배'체제다. 좋은 정당도 필요하고 좋은 정치가도 필요하고 좋은 지지자도 필요한 것이 현대 민주주의이다.
인간의 정치와 정치적 이성
정치적인 것의 가치를 이해할수록, 정치적인 것의 위험성을 깊이 수긍할수록, 그리고 권력이나 지배 같은, 정치 현상의 불가피한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그는 반드시 인간적이 되고 신중해지며 말하는 내용도 풍부해진다. 그렇지 않고 운동과 이념의 논리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조건 옳고 역사 발전에 대해 모두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례하고 공격적이다.
주장이 강하고 비타협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끼리 폐쇄적 의견 집단을 형성해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기 쉽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모른다'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인간도 모두 알 수는 없기에 웬만한 대화에서 '그건 내가 잘 모른다'라고 해야 할 때가 많은텐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뭐든 아는 척'을 하는 게 고칠 수 없는 병이 된게 아닌가 여겨질 때가 많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없이는 넓게 협력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깊은 인식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협력하도록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성을 갖춘 사람은, 앞서 끊임없이 강조했듯이 늘 내가 틀릴 수 있고, 그래서 타인으로부터도 배워야 하고, 내가 다루는 무기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책임감 있게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이들이다.
인간적인 삶을 풍부하게 하는 정치
인간적 삶을 풍부하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진보적이어야 하고, 민주주의의 정치적 내용이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공정하게 실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보적이어야 하지, 거꾸로 진보적인 것에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종속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경우 폭넓은 시민 대중의 지지를 조직하기는커녕 진보파 스스로 자기소진적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인간과 정치의 현실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진보의 길을 깊고 넓게 개척해 가야 할 것이다.
진보적인 것만을 앞세우는 접근은 주변 사람들에게 과도한 가치확신을 강요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을 분열과 상처로 얼룩지게 하고, 인격적인 요소를 경시하게 만들어 진보 정치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며,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민주주의하에서는 진보도 여러 정치 세력의 하나이고 스스로의 권위와 영향력은 다른 정파와의 민주적 경쟁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보수 없는 진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민주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전체주의에 가까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보수 등 다른 정파와 정치적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념이 다르다고 적대하거나 인격적으로 배척하고 무시하는 식은 곤란하다. 그건 진보적인 태도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적인 가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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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정치적 이성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종,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 기초 위에서 진보가 진보다워야 할 것이다. 진보적인 것을 위해 정치를 부정하면 안 된다. 진보는 지금보다 더 그리고 제대로 정치적이어야 할 것이다.